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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시대의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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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9  15: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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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훈
부산대 교수 컴퓨터공학과

요즘 대학의 모습을 보면 풍선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산업과 연계된 공학분야는 사회적 이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공학 기본교육이 강화된 공학인증제, 실무형 인력양성 프로그램 운영, 학생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전공학점 축소, 심지어 가정이나 초중고에서 완성되어야 할 인성교육까지 제대로 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요즘은 또 융합교육을 해야 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예이츠가 “교육은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일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시대적 이슈들이 대학이란 통에 던져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융합의 시대에 ICT산업의 주변을 돌아봄과 동시에 대학, 기업, 정부의 역할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융합이라는 단어가 사회 전반에 걸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잡스가 애플과 픽사에서 이루어낸 성과가 그의 짧은 대학시절에 배웠던 인문학적 지식 덕분이라는 해석이다. 즉 그의 성공 신화는 융합이 만든 것이라고 분석이다. 요즈음, SNS, 검색엔진과 같은 ICT기술이 융합에 필요한 지식 습득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그 방법을 잘 아는 것이 융합에 아주 중요하다’, 심지어 ‘그것만 잘해도 융합을 잘 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주장도 있다. 전문지식이나 소양보다 얇은 지식의 조각으로 포장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개념에 몰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ICT 기술이 모든 산업과 접목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한 미래의 산업구조에 변화를 주고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3차 산업혁명>이란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융합에 의한 창조적 산업의 도출이 사회적 흐름이 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나 환경은 지식산업 사회에 맞지 않은 이전의 옷을 입고 있다. 전통적인 산업구조에 맞는 제도 환경이 융합에 의해 도출되는 산업구조에 맞는지 점검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소프트웨어 관련 국가R&D사업에서 집행되는 인건비 항목의 제한은 여전히 지식산업 도출에 한계를 안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기대를 해본다.

실무형 교육에 필요한 인턴을 위한 환경을 살펴보면, ICT분야는 다른 산업에 비해 더 열악하다. 각종 국가사업에서 산학연계 및 학생들의 인턴십을 요구하지만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아 보인다. 초보 ICT엔지니어가 할 만한 실무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는 기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지방의 영세한 ICT 중소기업은 인턴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거나 실무를 배우려는 인력을 감당할 만한 여력이 없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기업과 인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기업은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 달라고 주장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도 한다. 이를 위해 대학들은 졸업학점을 줄이고 전공을 위한 시간을 줄이고 있다. 다른 학문과 다르게 산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공학은 진입벽이 높다. 또 다른 것을 하나 더 익히려면 4년이라는 틀을 고집해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오래 전에 MIT에서 ‘빠르게 변하는 산업기술에 대비해 어떤 공학자를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 답은 ‘변하는 기술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본에 충실한 교육’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몇 년도 써먹지 못하는 부실한 인력을 육성했다’고 무더기 리콜사태가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실무에 강한 기초엔지니어 육성은 대학 보다는 기업의 입사제도에서 그 해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인턴경력을 입사에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삼는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에만 그것을 부담하라고 할 수 없다. 정부는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ICT 분야에서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인턴 실무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권장하는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단기간에 인턴은 배우는 것이 없고, 기업은 이득이 안 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지식으로는 제대로 된 융합이 힘들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공부에 왕도가 없다는 것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대학에서는 튼튼한 기본 전공지식을 전수하는 것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좋은 운동선수가 기초체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티머는 <독서의 기술>에서 “대학졸업장이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지식의 이해는 튼튼한 기본전공지식에서 나온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요구해야 하고 다양한 요구를 하는 사회에 대해 당당히 주장해야 할 명제이다. 그 토대 위에 불을 지펴 융합의 불꽃을 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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