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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발 가꾸기는 시간과의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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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8  18: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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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숙
프랑스 뚜르대학
불문학 박사․수필가

강원도 산골에 자리잡은 후 4번째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산골생활이 단순해질수록 오히려 감각은 예민해졌다. 사계절의 리듬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 하루의 날씨에 따라 그날의 해야 할 일이 정해져버린다. 그래서 날씨를 시간단위로 체크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뒷감당을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지속되는 가뭄이나 장마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무력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를 맞이하는 반가움,  장마 끝에 찬란히 빛나는 햇살을 만끽하는 즐거움들은 도시에서는 잊고 있었던 극히 원초적인 감각들이다.
이제는 흔한 표현처럼 되어버린 ‘느림의 미학’ 이라는 것은 내게는 햇살의 밝기와 바람의 흐름에 따라 마음을 내 맡기는 상태를 의미한다.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생각 거리도 많아진다. 잡념이 사라지는 대신에 사람 살아가는 단순한 법칙들을 몸과 마음으로 재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즐겨 ‘시간 바라보기’ 라는 표현을 쓴다. 시간과 싸우지 않고 시간에 나를 맞추노라면 느림의 미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고 구체적 생활습관이 되어버린다.
때를 놓치면 안되는 일들의 연속인 시골에서는 봄이 가장 바쁜 계절이다. 퇴비를 뿌리고 밭을 갈아서 부지런히 씨를 뿌려놓아야 하고, 이어서 풀들과의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 대부분 밭갈이는 굴삭기나 관리기의 힘을 빌려서 속전속결로 이루어진다. 빠르게 진행되면 좋을 일을 내 상황에 맞추다 보니 호미 한 자루로 며칠을 걸려 밭갈이가 이루어진다. 기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내게 그나마 가장 만만한 농기구가 호미이다. 손의 감각만으로 땅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면서, 오직 나의 의지와 힘의 리듬감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호미 하나로 다룰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로 정하고, 일의 양보다는 일하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텃밭 가꾸기의 방편으로 정했다. 그러므로 호미 한 자루는 ‘자발적 불편함’ 이라는 귀촌 생활 방식의 상징성을 지니게 된다.
그럼에도 마음이 급해지면서 굴삭기로 밭가는 사람들이 부러운 생각이 들 때면, 여행 중 들었던 볼리비아 할머니 이야기를 떠올린다. 수크레라는 도시에서 사진점을 하는 교민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시장에 갔더니 할머니가 고추를 따갖고 와서 길거리에서 팔고 있더란다. 한국 고추의 원래 원산지가 그곳이라서 반가운 마음에 한꺼번에 사려고 하였다. 그러나 할머니의 대답은 아침에 이 고추들을 한 사람에게 한꺼번에 팔면 자기는 하루종일 무얼 하면서 지내느냐고, 1볼리아노씩 여러사람에게 하루종일 팔아야 한다고 안된다고 하더란다.
우화에서나 읽을법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들을때만 하더라도  한국 할머니 같으면  한꺼번에 팔아버리고 얼른 다시 밭에 가서 고추를 땄을 것이라면서, 다른 주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 사는 볼리비아인들의 순진무구함 또는 융통성의 결여로 여겨었다.
그러나 그 후로 가끔 그 할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관계이든 결국 시간을 투자한다는것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결과물로 판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봄이면 돌배나무의 어린 묘목들을 심었다. 꽃피고 열매 맺으면 발효액을 담는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텃밭 가득히 봄이면 하얀 돌배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날 풍경이 가장 기대가 된다. 이 행복한 상상 또한 시간과 다투게 되면 초조함으로 변질되어버릴 것이다. 
내 생전에 누리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어린 묘목을 심는 마음이 시간과 더불어 사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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