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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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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23  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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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상국은 살아생전에 쇼 무대에서 그의 18번 ‘쾌지나 칭칭나네’ 를 흥겹게 부르며 팬들에게 노래로 팔도유람을 시켜주기로 유명했다. 노래 가운데서 그의 고향 부산을 자랑할 때면 첫 번째 등장하는 메뉴가 바로 영도다리였다. “부산 땅으로 가보입시더 영도다리가 끄떡끄떡 하루에도 두 번씩 끄떡끄떡” 이렇게 남성의 심벌(?)에 빗댄 노랫말로 익살을 떨었던 영도다리는 부산항의 생동감 넘치는 명물이자 이야기꺼리였다. 더군다나 정 시각에 맞춰 하늘높이 다리를 들어 올릴 때면 그 아래로 숱한 배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그 뱃길 따라 갈매기마저도 날아들어 부산항의 또 다른 관문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때로는 근처 연안부두 여객선에서 흘러나오는 뱃고동소리와 유행가 노래까지 어울러 한층 항구의 분위기를 들뜨게 했다. 이처럼 영도다리가 한 번씩 들어 올릴 때마다 부산항에는 나름대로 생기와 낭만이 넘쳐났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일곱 번, 뒤에는 기력마저 쇠했는지 2번씩 올리다가 지난 1966년 9월에 다리 아래로 상수도 배관을 매달면서 그만 영도다리는 고유한 도개기능을 아예 잃고 말았다. 김상국은 이걸 스토프(Stop)가 되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영도다리는 그날로부터 고자(鼓子)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기를 47년, 숱한 사람들은 예전의 도개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지난 2010년 7월부터 다시 그 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영도다리는 수술대에 누웠다. 종전 4차로를 6차로로 다리 폭을 넓히고 선박대형화 추세에 맞춰 다리 높이도 최고 1.31m 높아지면서 도개(跳開) 기능을 중구 남포동 쪽 상판 31.5m를 75도 각도까지 들어 올리는 대수술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공사를 두고 혹자는 이런 우스개를 했다. 영도다리가 지금 한창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와 시알리스’를 먹고 있다고. 이렇게 해서 영도다리는 2013년 11월 말에 다시 도개기능을 선보이며 부산항의 옛 명성을 찾으려고 하늘을 향해 건강미를 과시하며 관광객을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영도다리는 1934년 일제강점기에 설치된 부산항의 유물중의 하나였다. 일본의 조선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영도에도 조선공업과 군수산업시설이 서서히 들어서게 되었다. 이들 공장에 들어갈 원자재와 같은 제품을 운송하는데 애로점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대두된 것이 다리건설이었고 이것이 공론화 된 것은 1926년께였다. 처음에 영도다리 건설계획이 발표가 되자 반대여론이 상당했다. 이해당사자인 영도도선업자와 해운업자가 반대 주도세력이었다. 특히 해운업자는 배가 운항하는데 지장을 주는 난장이다리를 설치함으로서 영도를 빙 둘러 운항을 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늘어난다는 것이 반대이유였다. 이러한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나온 절충안이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영도다리를 들어 올려 뱃길을 튀어줌으로서 바다와 육지가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었다.

부산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변방이자 관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왜구의 침범을 방호하기 위해 수군본영이라 할 수 있는 경상좌수영이 지금의 수영천 하구에 자리하여 변방을 지휘하였다. 이곳에서 군선과 통신사선을 만들고 관리하는 선소(船所)까지 있었다. 반면 대일통신사선이 드나들었던 해상관문은 동천하구지역으로서 사행을 떠나기 전에 이곳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내며 바닷길의 무사안녕을 빌기도 하고, 통신사일행이 부산포에 머무르는 동안 군선(軍船)을 타고 태종대와 몰운대 등에 해상관광을 떠나기도 했던 선창이 자리하였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바다와 소통했던 이곳은 부산의 역사가 숨쉬고 있는 성지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매립으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는가 하면, 육상교통위주의 나지막한 다리가 건설되면서 뱃길은 자유롭지 못하고 바다와 소통하는 이야기마저도 멀어지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변의 도시들은 대부분 다리가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관광유람선이 드나드는 수로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상생의 끈을 놓치는 바람에 물길따라 함께 흐르던 뱃길의 역사도 끊기고 말았다.

오늘날 항만의 위세는 하늘을 향해 치켜세운 거대한 크레인의 웅장한 모습에서 찾기도 한다. 그런데 무인자동화시대에선 이걸 운용하는 사람은 강인한 사내들이 아니라 가냘픈 아가씨의 손가락에 의해 육중한 크레인이 움직이는 추세다. 그동안 항만은 사내들의 땀 냄새 물신 풍기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시대답게 부드럽고 화려한 공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나 할까. 곧 개통할 부산항대교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무지개빛 야경으로 부산항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할 것 같다. 190미터높이의 다이아몬드형 주탑에 매달린 다리높이가 자그마치 60미터로 보통다리보다 높다. 다리 아래로 10만 톤급 대형크루즈선의 통과를 위해서다. 흥미가 있는 것은 부산항에 이와 같은 키다리다리가 등장함으로서 그동안 난쟁이다리인 영도다리와 상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부산항은 북항재개발을 하는 등 큰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변화가 있는 곳에는 고민이 따르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까지 갖게 한다. 12시 정오에 맞추어서 영도다리 주변에는 다리도개장면을 보기 위해서 경향각지에서 숫한 관광객이 몰러들고 있다. 이들은 통제된 도로주변에 서서 난장이다리의 일회성 단막 쇼를 보기 위해 마음을 졸인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많다. 진작 이들을 유람선으로 모셔 영도다리의 역동적인 도개순간을 함께 연출하는 관광객으로서 다가서게 하면 이게 바로 부산항 정서에 맞는 해양관광산업이 되고 영도다리를 진짜 들어 올리는 이유가 될 텐데 말이다. 내친김에 이들 유람선을 태종대로, 해운대로, 몰운대로 부산8경을 비롯하여 부산항대교 야경까지 즐기고 가도록 유도하면 얼마나 좋을꼬. 그리고 교통이 편리하고 바다 접근성이 좋은 역사깊은 동천포구와 수영포구로 유람선이 드나들어 이곳의 내륙관광과 연계됐으면 더욱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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