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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왜 국가나 민족은 흥망성쇠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혁신과 창의력 씨앗 포용하는 정치·경제가 亡·衰 최소화"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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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15: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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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 흥망성쇠, 일회성 아닌 영속적
경제 성장과 쇠퇴 반복 모습으로 드러나
정신·제도가 변화에 유연하지 못해 국가 쇠퇴
법령·제도 국가장치 새 환경 대처하느라 낡아
국가장치 고장났을땐 대규모 위기 대응 못해
英산업혁명, 낡은 지식의 한계 넘어선 결과
경제특권층 이익 줄이는 정치개혁 중요


 
   
 ▲김영삼 (전 부산연구원장)
이제 곧 2019년이 저물고 2020년이 시작된다. 해가 바뀐다고 해서 별 다른 일이야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심적으로 2019년 보다는 2020년이 더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글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기대감과 함께 국가의 흥망성쇠에는 어떤 원리가 작동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새삼스러운 주제는 아니지만 일정한 시기가 되면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이며, 아마도 기원전부터 인간이 집단을 구성하고 삶을 영위하면서 생겨난 고민임에는 틀림없다.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의 페르시아와 서양의 아테네(좀더 넓게는 헬라스(그리스)인들의 도시국가)가 왜 다투게 되었는가를 기술한 책이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24년경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스스로 이 책을 탐사보고서라고 말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전에는 강력했던 수많은 도시가 미약해지고, 내 시대에 위대한 도시들이 전에는 미약했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행복이란 덧없는 것임을 알기에 헤로도토스는 큰 도시와 작은 도시의 운명을 똑같이 언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현자들은 이미 인간세상의 흥망성쇠가 일회성이 아니라 영속적임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20세기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개발시대로 접어들면서 흥망성쇠의 순환논리에서 경제의 성장 혹은 쇠퇴라는 협소한 단선적 진행 논리가 지배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흥망성쇠의 논리는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① 그렇다면 국가는 왜 쇠퇴하는가?
내가 보기에는 국가쇠퇴의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지배집단의 리더십 소멸이고 다른 하나는 리더십을 지탱해주는 시스템의 붕괴이다. 즉 정신과 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해나가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역기능 때문이다.

BBS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문명의 탄생과 몰락'을 교육방송(EBS)에서 방영한 적이 있다. 마지막 편은 '팍스로마나와 기독교의 탄생'이다. 로마제국(기원전 27- 기원후 476 서로마제국 멸망)의 번성은 다민족 문화와 종교를 인정하는 포용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포용력의 상실이 로마몰락의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인 시칠리 섬의 시라쿠스와 페니키아의 식민도시도 이탈리아 반도에 있었는데, 당시의 도시국가인 로마는 이들보다 나았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 도시국가가 세계제국으로 발전한 것은 국가운영 원칙이 포용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븐 할둔은 역사서설(1377)을 쓴 14세기 대표적 무슬림 역사학자이다. 그는 이슬람 왕조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대체로 3대를 넘어선 왕조가 별로 없음을 발견하고, 왕조들의 흥망성쇠는 지배자와의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한 결속력의 유지와 상실에 있다는 원리를 주장하고 있다.

애스모글루와 로빈슨의 공저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포용과 착취 개념을 활용하여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설명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분산, 경제활동 영역의 다각화와 경쟁체제, 사회계층의 권한 강화, 언론의 자유와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을 통한 정보의 유통 등이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를 오래 지속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이러한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엘리트층과 엘리트층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계층 간의 첨예한 정치 갈등의 산물인 때가 많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은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일단 뿌리가 내리면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는 긍정적 순환을 되풀이하며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어, 그런 제도가 더 오래가고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용적 정치·경제제도가 착취적 정치·경제제도로 퇴행하여 몰락하는 경우도 있는데, 프리드만은 뉴욕타임즈 일요판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서평에서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면 경제도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항상 혁신을 요구하는데, 문제는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나타나지만 이는 경제영역에서 신·구세력의 교체를 의미하며, 동시에 정치에서도 기존의 권력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에 포용적 정치·경제제도의 선순환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미국상황에 있어서 경제적 불평등이 갖는 실질적인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 불평등으로 전이될 수 있으며, 미국의 포용적 정치·경제제도가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변화하려는 정치·경제제도의 유혹을 과감히 떨치고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고, 질적 성장을 유발하는 제도를 시대상황에 맞게 뿌리내리기 위해 낡고, 작동하지 않는, 그리고 방해하는 제도들을 과감히 수선해야 하는 것이다.
 
② 쇠퇴의 가장 두드러진 원인은 무엇인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법령과 제도들(장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율성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향을 미치면서 존재하는 반면, 이들 낡은 법령과 제도 위에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법령과 제도들이 뒤엉켜 작동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비효율성이 증대한다. 이를 흔히 '사회적 수확체감'이라고 표현한다.

국가체제를 여러 장치들의 누적된 실체라고 파악할 경우, 장치들이 낡아서 발생하는 문제(즉, 장치 피로감), 새로 도입된 장치가 기존의 장치와는 잘 맞지 않아서 작동이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경우(개혁이나 혁신의 경우), 전혀 다른 장치가 도입되어 기존 장치와 별개로 작동하는 경우(다른 이념체제의 도입) 등으로 인해 국가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거의 어렵다. 국가와 달리 기업의 경우는 대부분 생성-성숙-쇠퇴-소멸과정을 거치며, 내부 장치의 작동이 매끄럽지 않을 경우, 기업은 조만간 사라진다. 그러나 특정 국가나 종족이 특정 공간에서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이상, 장치의 흔적들이 남아서 새로운 장치들과 은폐된 채로 작동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장치들의 작동을 가끔씩 고장 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의 IMF 외환 위기는 국가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씨는 최근에 발간한 회고록 "명과 암 50년-한국경제와 함께"에서 IMF 원인은 국가장치의 고장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선후진국 막론하고 유지보수하지 않은 낡은 장치들과 새로이 의욕적으로 만든 장치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새로운 장치마저 고장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국가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뒤섞여 있는 국가장치들을 어떻게 하면 유지보수하여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 수 있느냐다.
 
③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가?
역사적으로 성공 사례를 살펴보면, 데이비드 랜즈는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책 '국가의 부와 빈곤'에서 '산업혁명이 그 당시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해답을 찾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① 어떤 이유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한 나라가 관습과 낡은 지식의 껍질을 깨고 이렇게 새로운 생산방식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② 어떤 이유로 다른 나라가 아닌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지식 및 노하우의 축적'과 어느 지점에 이른 '한계돌파'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탐구에 대한 자율성, 과학적 방법론의 확립, 연구와 보급의 상례화를 통한 지식과 노하우의 축적은 특히 17세기부터 학회가 만들어져 지식의 공유와 발명에 이은 발명을 계속할 수 있는 지적 여건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과 지식의 축적은 특히 응용분야에서 성과를 올렸는데, 이는 오늘날 지식생태계의 확산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주요 원인은 연구와 개발,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진취적 정신의 소산이라고 랜즈는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정신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국가는 개인의 열망과 진취성을 사회적 목표와 조화시키고, 그렇게 합쳐진 힘을 통한 상승작용으로 국민의 능력을 더욱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 이상이 된다. 즉, 이러한 국가의 시민은 정부의 격려와 주도에 기꺼이 협력하며, 정부는 활발한 사회 분위기에 부응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잘 안다. 그런 국가가 경쟁력이 있다고 랜즈는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아담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특히 자유와 안전의 면에서는 더욱 강하다. 이런 면에서 영국의 산업은 완벽하게 안전하며, 또 완전한 자유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자유롭다."

경제양극화를 상징하는 승자독식은 오늘날 세계경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하고 뚜렷한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클린턴 대선캠프에서 내걸었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인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미국정치인들이 국민 대다수를 희생시켜가면서 미국의 정치와 경제원칙들을 극소수 부유층에게 유리하도록 수정하게끔 만든 속임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모리시마 미치오는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는 국가의 몰락징후 중 하나로 정치혁신의 결여 즉 정계-재계-관계의 유착이 낳은 사회의 총체적 부패를 꼽고 있는데, 결국 정치의 혁신 없이는 사회적 수확체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으로 '사회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따라서 특권층의 이익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춘 정치개혁이 매우 중요하다.

비스마르크는 만들 수도 방향을 돌릴 수도 없고, 단지 나라가 가진 다소의 다룰 수 있는 숙련과 경험으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항해하고 있다고 언급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숙련과 경험은 정치에 의한 지도력과 신뢰감에 의해서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부강은 그 나라가 지닌 힘과 부의 크기와 그 유지에 좌우되지 않고 이웃나라들이 그 나라보다 더 많이 혹은 적게 가졌는가에 주로 좌우된다고 360여 년 전 독일의 중상주의 사상가 폰 호르니크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시대 속성과 주변 나라들의 사정은 외적 요인이며,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위기는 항상 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외적 상황이 어떠하든 그 나라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수확체감요소를 과감히 제거하고, 혁신과 창의력의 씨앗들을 지속적으로 유입하고, 관리하는 방법 말고는 쇠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는 결코 없다. 아울러 흥망성쇠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는 없다 하더라도 주어진 상황을 적극적으로 타파하여 흥과 성은 지속시키고, 망과 쇠는 단축시키는 방법에 대한 수많은 현자들의 가르침들이 우리로 하여금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시켜주고 있음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 
김영삼 전 부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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