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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길 위의 교훈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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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31  17: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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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향은
     고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부산에 살면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서울에 살 땐 몰랐던 부산 인근의 아름다운 곳을 알게 되고 가볼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해마다 3월이면 학생들과 MT를 가는데 밀양 배냇골이 단골 장소였다. 봄에만 여러 번 갔던 배냇골을 올해는 여름과 가을에 다른 일행과 가게 됐다. 7월과 10월 두 동호회의 주말 트래킹에 합류해 10km 가량 배냇골 개울 주변의 평지를 걷고 산지를 오르내렸다.
 
4시간 정도 걸으면서 길 위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알고 기억해 온 배냇골은 초봄의 배냇골이었다. 한여름 불볕더위에 찾은 배냇골은 춘삼월의 배냇골이 아니었다. 무성한 초록빛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을에 찾은 배냇골은 여름의 배냇골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여름볕과는 다른 느낌의 가을볕,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과일, 가는 길마다 수북이 쌓여 있는 낙엽의 배냇골이었다.
 
내 머리 속에 각인된 배냇골은 그 일부, 일면, 일각에 불과한 것임을 알게 됐다. 우리의 지각과 인식은 주관적으로 경험한 바에 좌우되고 한정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뇌었다. 제한된 경험에 기초한 사고와 판단을 조심해야 할 필요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곳을 다른 계절에 걸으면서 얻게 된 성찰이었다. 이 성찰은 힘겨운 경사로를 오를 때나 끊긴 길, 막힌 길을 만났을 때 헤쳐 나갈 힘이 되었다.
 
또 다른 깨달음도 있었다. 이번 트래킹은 좋은 날씨, 이미 가본 길이라는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무더운 여름날의 초행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걸으면서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호우와 태풍의 영향으로 곳곳에 길이 끊겨 어렵사리 길을 내 통과하거나 왔던 길로 돌아가야 했기에 에너지를 많이 소진한 탓일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험난한 길을 걷느라 힘겨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정의 1/3쯤 되는 지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어갔다. 허기를 달랠 수 있어 좋았고 쉼 없는 행진으로 지친 몸을 쉴 수 있어 좋았으며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어 좋다. 또한 무거운 배낭을 홀가분하게 비워낼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가는 이의 짐을 나 몰라라 하지 않고 나눠지는 일도 필요한 일이지만, 덜어야 할 짐을 제때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됐다.
 
식사 후 몇 명은 남은 일정을 포기했다. 나는 다른 일행과 함께 계속 걷기로 했다. 이후 중단 없는 강행군이 이어졌으며 내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나로 인해 속도가 늦춰져 차질을 빚게 될까봐 조바심을 내며 걷다보니 여정의 후반은 초반과 달리 주변의 경치를 즐기거나 사색의 걸음을 내딛기 어려웠다. 이런 마음의 변화와 그로 인한 결과의 차이를 실감하며 심리적 행로의 작용과 파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만두고픈 마음도 들었지만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동행한 이들의 배려와 도움 덕이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위해 흔쾌히 속도를 늦춰주는 마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손길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고 그 끝에 종착지가 있었다. 힘겨웠던 만큼 여정을 마친 후의 기쁨은 길고 깊었다. 고난의 행군 같았던 가을 배냇골을 다녀온 지 일주일밖에 안됐는데 벌써 겨울 배냇골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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