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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한국의 '신지식인' 운동과 핀란드의 창업이벤트 '슬러시'"사회분위기 바꿀 때… 작더라도 자발적 참여와 배움부터 시작"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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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4  17: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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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핀란드 역사·경제적 상황
   
 ▲ 김영삼(전 부산발전연구원장)

겉으로 보면 비슷한 부분 있지만
시민사회·민간·정부역할 등 차이
한국 IMF 겪으며 지식강국 목표
핀란드는 젊은층 자발적인 창업
 
올해 12회째 맞는 이벤트 '슬러시'
기발한 행사 컨셉·청년 직접 준비
창업의 실패 용인돼야 한다는 인식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문화 정착돼
슬러시 성공이 젊은층 공감 불러와
전문가 목표로 도전하는 용기 가져


지난 6월에 두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하나는 한국신지식인협회에서 일 년에 두 번씩 수여하는 '신지식인' 인증식 행사를 치렀고, 이에 앞서 2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한국신지식인협회를 초청하여 '신지식인 육성제정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하나는 대통령의 국빈방문으로 관심이 높아진 핀란드에 대해 공영방송이 핀란드의 세계적인 창업이벤트 '슬러시'에 대해 소개했다.
 
 일반 독자들은 둘 다 아는 바가 별로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좀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한국과 핀란드가 역사적, 경제적 상황 등이 비슷하게 보이지만(심지어 심성까지도)정작 차이가 나는 것은 시민사회의 자발성, 정부와 민간부분의 관계, 정부의 역할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독립 후 기간산업이 1차 산업 중심이었지만, 첨단산업육성정책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반도체산업을, 핀란드는 무선통신산업을 발전시켰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주도 정책을 펼쳤으며, 1992년에 금융위기를 핀란드는 겪었으며, 1997년에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실업문제 해결과 지식강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주도의 신지식인 운동을 일으켰다. 핀란드는 2008년 대기업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국가경제가 흔들리자 창업에 큰 방점을 두었으며,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시작된 창업이벤트가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케이스를 소개함으로써 한국이 향후 국가주도형 사회와 민간주도형 혹은 혼합형 사회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 한국의 신지식인 운동
 1998년 말 IMF 국난극복을 위해 매우 바쁜 와중에도 김대중 전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조정대책회의에서 신지식인운동이 첫 거론됐다. 1999년 2월 3일 "제2의 건국 한마음 다짐대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모든 사람이 신지식인이 되자. 전업주부, 농민, 노동자, 회사원, 공무원 등 모든 사람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자신의 일을 고부가가치화, 고능률화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전 국민이 21세기형 한국인이라 할 수 있는 신지식인화 시대를 앞당기자" 며 신지식인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21세기 창조적 지식기반의 국가건설 차원에서 시작된 사회의식 개혁차원의 '신지식'운동은 청와대 정책기획실에서 주도해 나갔다. '누구든지 지식인이 될 수 있고, 국가 전체의 지식화 추진을 도모하자'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현장지식인" 발굴 계획(1998년 10월)을 시작으로 신지식인 사업이 전개되었다. 이후 신지식인 선정은 초기 정부부처를 비롯해 광역시도로 확대됐으며, 나중에는 전국 기초단체까지 범위를 넓혀 전 행정기관이 신지식인 발굴, 선정에 동원된 셈이다.
 
 정부는 이 사업의 진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당시 새로운 민관협업체계를 지향하게 될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에 이 사업의 조정과 총괄을 맡겼다. 민관운동으로 새롭게 개편된 제2건국운동의 한 사업으로 '전 국민의 신지식인화'를 제창했다. 2003년 중반 신지식인 사업은 제2건국위원회의 해산으로 인해 행정자치부로 이관되었으며, 2005년 9월 정부차원의 신지식 관련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신지식인 사업이 협회로 넘어온 2006년 11월경 (사)한국지식인연합회 임시총회가 개최되었고, 그 이듬해 1월에는 협회 차원의 전국 지역 순회간담회를 시작으로 2007 신지식인 포럼(3월), 회장단 간담회, '신지식인 육성지원 및 신지식인의 사회적 공유에 관한 법률 제정추진단을 만들어 국회 행자위 1~2차 방문(8~9월)을 했었다.
 
 국민의 정부시절 왕성하게 추진됐던 신지식인운동은 매년 20여억 원의 예산이 투입 되는 '물먹는 하마'로 비난받기도 했으며, 당시 20억 원 예산은 사업의 육성, 발전을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당시 건국위원회 직원이나 각 부처 실무담당자의 급여로 지급되는 등 신지식인 지원과는 무관하게 집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지식인 사업은 선발과 발표에만 주력했을 뿐 이들의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지식인들의 노하우들을 알리고 확산시키기 위한 정부 주도의 박람회나 전시관 등은 2002년 단 한 차례 밖에 없었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했다.
 
 신지식인협회의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에는 신지식인에 관한 이름과 소속, 선정 분야 등 기초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수천 명을 신지식인으로 지정했지만 내실도, 실적도 없이 무늬만 남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주도의 사업은 민간부문을 종속시키고, 항상 정부예산만 바라보는 관행을 만들게 된다. 신지식인운동도 마찬가지다. 한국신지식협회는 신지식인 발굴 육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는 법 제도가 마련되어야 관련부처에서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국회 입법 발의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 핀란드의 '슬러시'
 - 슬러시: 핀란드어로 눈과 흙이 뒤섞인 진흙탕

 노키아가 세계무선통신시장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핀란드의 젊은이들은 노키아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지 창업은 어리석은 짓이라 여겼었다. 그것도 2008년 이야기이다. 슬러시 웹사이트(https://aaltoes.com/)에 보면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2008년 헬싱키의 한 대학교수가 그의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란 기업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핀란드 정서는 기업가적인 것이 아니었다. 즉 위험을 감수하거나 혹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인정받지 못했다."
 
 2008년 노키아가 몰락하자 대학생들이 이러한 주장에 반발을 하고 나섰다. 사회분위기를 결정적으로 바꾼 것은 정부나 대기업이 아니라 젊은 층이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학뿐만 아니라 핀란드 전체를 새롭게 만들 비전을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그들은 MIT 대학을 방문하고, 노벨수상자인 홀름스트롬(Bengt Holmstrom) 교수를 방문했다. 그들은 교수에게서 한 가지 가르침을 새겼는데, '배운 대로 행하라' 였다.
 
 이들은 창업을 위한 이벤트를 열기 시작했으며, 2009년 핀란드 알토대학교 학생 3명이 이제 막 부임한 초대 총장(알토 대학교는 2010년 통합개교함)의 사무실로 찾아가 자신들의 비전과 경험을 직접 미국에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 총장은 스탠포드와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귀국한 후 창업동아리인 알토이에스를 지원하고 기업가정신을 배양할 기본토양을 만들 공간으로 헬싱키 기술대학교 근교에 있는 빈 공장 건물을 통째로 사용토록 허락했다. 나머지는 학생들의 일이였다. 이렇게 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진 창업 이벤트인 슬러시는 2008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에 12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핀란드 대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웠다는 것인가? 사이언스타임즈 기사(2010.09.24.)에 의하면, 2010년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은 고급인력을 공급하고 있는 알토(Aalto)대학교라고 한다.
 
 2010년 초 핀란드는 헬싱키 공과대, 헬싱키 미술디자인대, 헬싱키 경제대 등 3개 대학을 통합시켜 정원 1만6000명의 알토대를 출범시켰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 디자인, 비즈니스가 한 지붕 아래서 융합할 수 있게 됐다. 세계 최초로 순수하게 혁신에만 초점을 맞춘 다학제적인 '혁신대학'이 출범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대학을 출범시키기 위해 핀란드 정부가 지난 15년 간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는 것이다. 3개 대학은 1995년부터 각 대학 학생을 선발해 조를 짜고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통합 실험을 실시해왔다. 그리고 공동 프로젝트에 의한 첫 졸업생이 배출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다. 이런 지적 분위기 때문에 그들에게 제공된 낡은 공장을 수년에 걸쳐 최고수준의 공동작업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슬러시의 웹사이트는 슬러시의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우리들의 핵심 목표는 순수하고 단순하다-차세대 기업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수년 동안 슬러시는 대학 신입생에서부터 이미 창업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이벤트를 행함으로써 이 일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슬러시를 기업가, 투자가, 학생, 페스티벌 조직가 등으로 구성된 비영리 이벤트라고 소개하고 있다. 2013년 뉴욕타임즈와 월 스트리트 저널도 슬러시를 특집으로 다루었다.
 
 파블리(Publy)에서 소개한 박솔잎의 슬러시 현장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슬러시 행사 컨셉과 내용은 기발합니다. 모두 젊은 청년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결과물 입니다. 업무는 체계적으로 분담하고, 수평적인 의사소통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 중 임금을 받는 이는 소수의 핵심 멤버에 불과하지만, 시스템은 원활히 작동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저 신뢰가 시스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성실히 임하면 남도 그럴 것이다'라는 믿음이 구성원 사이에 녹아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삶의 여유입니다. 자원봉사자 다수는 치열하게 그러나 절박한 기색 없이 자신의 시간을 슬러시에 투자했습니다."
 
 이제 민간비영리단체로 활동하는 슬러시는 홍보 또는 후속 투자를 도모하는 스타트업,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하려는 대기업 그리고 새로운 투자처를 물색하는 투자자들을 한 곳에 모이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다. 2016년에는 스타트업 2336개, 1146투자관련 업체, 자원봉사자 2300여 명 그리고 관람객까지 포함하여 1만7500여 명이 참여했다.
 
 핀란드 정부는 미국을 벤치마킹하여 창업이 활성화되는 경제사회적 문화를 조성하고, 이들 가운데 일부를 구글과 같은 고성장 기업으로 육성시켜 국가경제를 견인할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정책 전환은 국민의 호응과 어우러져 핀란드 사회 분위기를 급속히 변화시켜 젊은이들이 선도하는 창업문화로 발전되었다. 아울러 현재 핀란드에서는 창업기업이 쉽사리 성공하기는 어려우니, 실패가 용인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수용하는 문화가 점차 정착되고 있으며, 이는 슬러시의 성공으로 특히 핀란드 젊은 층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곽의 빈 공장 건물에서 청년들은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무엇이든 도전하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1998년 한국의 신지식인운동은 실패했다. 벤처기업육성정책도 실패했다. 2019년 아직도 정부지원에만 목매고 있다. 2008년 핀란드의 슬러시는 아주 소규모로 시작했으나 세계적인 이벤트 사업으로 성공했다. 그리고 사회분위기도 바꾸었다.
 
 국가가 개입하여 완성품으로 만든 것이 신지식인이다. 더 이상 개인이나 사회의 발전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 슬러시는 자발적 참여에 의한 '배움'에 있다는 것을 최고의 매력으로 꼽고 있다.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김영삼 전 부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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