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UPDATE : 2019.10.21 월 09:32
> 기획/연재 > 연재
[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부산 어떻게 연구해야 하나?"성공한 외국 정책, 한국서 왜곡… 단어 해석 논의부터"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leaders.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승인 2019.09.25  16:35:36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 김영삼(전 부산발전연구원장)
 
서양의 도시이야기, 한국과 이질적… 중국·유럽 국한
한국, 공간의 역사성 없어… 수도중심 중앙집권적 운영

개념설계의 역량 부족, 경제·문화 등 한국사회에 영향
한자, 우리의식 변환 실패… 소통과정서 답답함의 결과

우리말, 사회현상 설명 단어 없어… 정책 일회성 그쳐
어려운 개념 매달리지 말고 부산사람 생각 뿌리 찾아야



도시문제에 접근하면서 그 수많은 다양한 매력적인 해결책들에 매료되면서도 결국 부딪히는 문제는 도시는 유럽이나 중국적인 현상이지 한국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대부분의 학자나 공무원들이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미 쪽에서 나오는 도시이야기는 상당 부분 한국과는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도시정책도 무의미하다. 한국행정을 탁상행정이라고 비난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현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말 없이 외래어(한자어와 영미어)로 풀어나가려고 하다 보니 현장과 관계없이 머리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고대 그리스 도시, 사는 사람에 정의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는 그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1531년에 출간되었다. '논고'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인 질문은 다름 아닌 '무엇이 로마 공화정으로 하여금 위대한 제국을 건설토록 하였는가?'이다. 궁극적으로 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대답은 하나의 문장, 즉 '도시들은 오직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영토나 부가 증대해왔다'는 주장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한다. 도시가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대의 도시국가나 중세도시라는 역사적 경험을 겪지 않은 우리로서는 오직 상상만으로는 그려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당시의 유럽은 이미 도시국가 개념이 형성되었지만 도시와 국가의 구분은 이미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은 개념변화가 있어 온 것이 분명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는 영토적 개념이기보다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는 개념이었다. 폴리스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폴리스는 '완전히 독립적인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시민들에 대해 절대 권한을 가지며, 종교의식을 통해 공고해지고 법의 지배를 받는다.'고 로베르 플라실리에르는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에서 소개하고 있다.

◇ 독자적 개념으로 접근한 도시문제
유럽의 역사와는 달리 중국은 단일지역 내에서 끊임없이 흥망성쇠를 겪어왔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중국은 도시가 자연현상 그 자체이며, 고대부터 형성된 의학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보고 있다. 2004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도시경쟁력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그 내용 중에 '우주로부터 미생물까지, 찬란한 자연으로부터 복잡한 사회까지 우주의 거대함을 우러러보고, 종류의 다양함을 굽어 살펴본다. 군집은 거의 모든 생물의 생존에 있어서 우선적이고, 필연적인 선택이다. 산업 클러스터가 세계에 공헌한 것은 영원히 늙지 않는 신화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군집은 도시형성을 표현하는 또 다른 단어이다. 이처럼 독자적인 개념으로 도시문제를 접근하면 해법도 달라 보이며, 실천 역시 가능한 것이다. 

"망문문절, 4진(四診)을 말하는데, 망진(望診)으로 병세의 정황을 모두 알 수 있으면 신(神)이라 하고, 문진(聞診)으로 병세의 정황을 모두 알 수 있으면 성(聖)이라하며, 문진(問診)으로 병세의 정황을 모두 알 수 있으면 공(工)이라 하고. 진맥하여 병세의 정황을 모두 알 수 있으면 교(巧)라 한다." 그 기본원리는 물질세계의 통일성과 보편연계의 기초위에서 세워진 것인데, 감각기관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생명활동과 유관한 일체의 정보를 획득하여, 증상에 맞는 투약의 기초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역사가 증명하듯, 망문문절은 중의학의 정수이자 중화철학관의 명확한 체현으로, 일종의 사상과 이념일 뿐 아니라,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 있는 과학적방법이기 때문에 도시경쟁력분석 방법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경쟁력인 클러스터와 혁신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서양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한국학자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빌려온 한자어와 외래어의 한계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행정집행 대상인 인구수로만 도시를 규정하고 있지만 공간의 역사성이 없기 때문에 도시정책 중에서 현실성을 가진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실제 한국은 경향, 즉 서울과 향촌만 있었지 서양과 같은 도시는 없었다. 따라서 한국은 권력자가 있는 수도중심의 중앙집권적 형태로 국가가 운영되어왔으며,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도시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도시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기 위해 정말로 다양한 소개들이 있으며, 부산시, 부산연구원, 부산경제연구원 등의 정책개발기관, 많은 대학의 논문, 지역신문 등을 살펴보면 종합적인 시각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많은 것들이 하나도 유기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비록 성공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구체화된 용어로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왜 그럴까?나는 이 원인을 2015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집필한 '축적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한국경제가 점차 위기에 몰리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창조적 개념설계 역량이 절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부 세계적인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산업계 전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경험의 축적을 통한 문제해결 역량의 결핍을 말하고 있다. 나는 개념설계 역량의 부족이 단지 경제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식 등 한국사회의 모든 부분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개념은 인간의 의식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문자이다.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힘주어 말하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지식인의 머리는 오직 한자로 만들어진 개념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들이 만들어 낸 정책이나 방책, 개인적인 문집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자이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중국 원어민 수준으로 생각하고, 글쓰고, 말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몇몇 뛰어난 유학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중국 원어민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한글창제에 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민중들이 말하는 방식으로 표기해서 그들이 글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문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용 활자를 만들어 글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지식을 보급할 수 있는 책을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통해서 한자와 조선이 사용하는 말의 차이에 중점을 두고 한글의 지적인 표현능력, 즉 개념생성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데, 이는 확실히 실패했다. 해방 후 한글전용운동은 여기서 평가할 부분은 아니다. 그러나 한자단어를 그대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할 것인가의 문제에만 중점을 두었지 절대적으로 부족한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한자와 일본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만든 사전은 중국과 일본의 사전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지 우리의 의식이나 경험에서 쉽게 설명되어지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번역이나 각종 저서나 논문 등은 한자어 혹은 외국어 명사에 한글 동사와 형용사, 부사를 결합한  좀 수상한 글로 변형된 것은 사실이다. 영어단어 역시 번역자마다 달리 표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똑같은 표기문자인 그리스어와 한글 중에서 그리스어는 무수히 개념을 만들면서 발전해왔지만 한글은 개념생성에 있어서 왜 제자리에 서 있는가를 학자들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한국이 갖는 가장 큰 문화적 딜레마는 한자를 우리 고유의 말과 의식으로 변환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한자 대신 어원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한자어로 된 모든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과 경험과는 관계없이 무조건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의 뜻풀이를 사용해서 현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공통점이 형성되기 보다는 분편화되어 각자가 사용하는 단어는 동일한데, 각자는 그 단어의 뜻을 서로 다르게 사용하는 일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폐쇄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이유는 사용하고 있는 말이 소통과정에서 공통분모를 가지지 못한 채 개별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답답함의 결과이다.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가 한국어에는 별로 없고, 단지 빌려온 한자어와 외래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외국에 새로운 정책이 있으면 한때 유행했던 단어인 벤치마킹을 통해서 국내소개하고, 공무원이 뭔가 새로운 정책으로 출세하고 싶으면 이들을 받아들여서 자신만 이해하는 수준으로 탈바꿈 시키면 된다. 개념을 우리 현상에 맞는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정책을 모방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책은 일회성에 그친다.  왜 내가 제목을 '부산을 위한 연구'라고 해놓고, 엉뚱하게 말장난을 하고 있느냐고 독자들은 짜증내겠지만 그동안 학자로서 부끄러움을 토로하고 있음을 널리 헤아려 주시길. 지금이라도 국내외 자료들을 짜집기해서 부산을 위한 정책들을 펼쳐낼 수 있지만, 내가 쓴 단어와 이를 읽는 사람들의 단어가 비록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통이 되지 않아 정책집행은 고사하고 정책내용을 서로 달리 해석하게 된다. 외국의 개념들을 자신의 지적 수준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탈바꿈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국에서 성공한 정책들이 한국에만 들어오면 왜곡되는가에 대한 가장 첫 번째 이유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정책왜곡현상을 말의 어그러짐이나 일방적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서로 논의가 있어야 함을 나는 강조한다. 그래야 의사소통이 되고 정책집행이 되는 것이다. 내가 행정학과 정책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외국 책도 이런 고민을 한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개념의 계보학이, 그리고 교육을 통한 사유의 경제성이 그대로 학문세계에, 정책현실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언급하고 있는 유형의 일차원적인 고민에서 그들은 이미 해방되었다고 본다.

◇ 상대 말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이해해야
이제 결론으로 나아가자. 부산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가는 언제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니 반드시 풀어내야 하지만 국내외 문헌에서 해법을 찾을 필요는 없다. 대신 부산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말하도록 하고, 그것이 어떤 말로 표현되는가,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오해나 불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제거하도록 해보자. 이를 통해 정말로 있는 그대로의 부산모습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가꾸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형태를 통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부산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으며, 그래서 상대방의 말들을 어떻게 왜곡해왔는가를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부산광역시 공무원 역시 중앙에서 던져주는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에 매달리지 말고 여기에 참여해서 생각의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2천년 이상 이 땅에서 말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우리의 개념으로 만들지 못한 잘못을 해결하기 위한 시작임과 동시에 부산이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러한 작업은 정체성의 문제로 나아갈 수 있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도시 이야기 베네치아'에서 언급한 그 지역과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정신' 이야말로 정체성과 연결된다. 이 또한 한때 부산의 정체성이란 이름으로 많은 연구가 있어 왔지만 지금은 부산관련 연구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개념이다. 부산시민과 관계없이 일부 학자들이 서양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보고서를 내고, 언론이 잠시 언급해 주는 것으로 정체성 문제는 끝이 났기 때문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신고하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미투데이 트위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594 |  대표전화 : 051-996-2400  |  팩스 : 051-996-2408  |  등록번호 : 부산 가 00020  |  발행·편집인 : 백재현
등록번호 : 아00219 |  등록일자 : 2015년 2월 06일 |  청소년 보호책임자 : 백재현
Copyright © 2014 일간리더스경제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