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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부산 인사이트] - 대한민국, 지식인 되기 쉬운 나라
일간리더스경제신문  |  leaders2400@leader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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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26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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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한국 지식 뿌리 신라 -고려 귀족
조선때 中소학이 최고경전 차지
일제강점기 거쳐 한학지식 사라져
일본어 번역 개념으로 서양문물 이해
지식·학자 대한 준거기준 못정해
'가방끈'만으로 지식인 논할수밖에
 
서울대 공대교수 '축적의 시간'서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 부족 진단
“직접 경험으로 창의적 역량 키워야"
 
한국, 선진국 지식 활용 외에 이룬것 없어
지식 생산-축적-활용-창조 생산과정 필요
 

 
지식인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지식인에 대한 특별한 위상을 기본 전제로 한다. 지식인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무엇인지 모르지만 잘났다는 것 등이 기본전제로 되어있으며,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에 몇 가지 사례를 열거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결론은 용두사미로 끝난다. 대부분의 신문칼럼의 글이 그렇고, 논문 혹은 책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지식인 문제에 대해서 올바로 접근하려면 이런 허상을 제거하고, "입만으로 먹고 살려고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권력에 줄을 대고자 하는 세칭 '가방 끈이 긴 집단'에 속한 일단의 부류들이 지식인이다" 라고 개념 정리를 하면 한국에서 야기되는 지식인 문제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우선 지식인이 되려면 어디서든 배워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우선 신라와 고려는 귀족이 지식인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조선은 귀족을 없애고, 사대부가 지배집단이 되었다. 따라서 신라-고려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새로이 중국 송나라 때 사람 주희의 사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인의 사고가 중심이 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한 규범은 주희가 대학을 공부하기 전에 기초소양의 필요성을 느껴 친구에게 부탁해서 만든 소학이 조선 최고의 경전이 되었다. 우스운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윤리규범을 다 없앴기 때문에 교육시킬 교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선이 망하기 직전까지 한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식인들은 일제시대(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한학이 폐지되자 그 존재가치가 사라졌다. 해방 후, 한글전용 교육이 강화되면서 조선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서양의 문물을 배워 새로운 세계질서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유럽어와 미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당시의 사대부집안의 자식들은 외국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엄청나게 당황하였을 것이다. 즉 개념형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양문물을 지적으로 이해할 수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받아들인 서양문물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어학사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중국불교가 인도불교와 거리가 한창 먼 것은 구마라집의 역경과정에서 중국의 사유체계가 엄청나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어로 번역된 개념(단어 혹은 용어 혹은 문자)을 통한 외국어는 서양의 실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며, 하물며 한국에 있어서는 외국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본어라고 불러도 시비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국수'라는 소설을 쓴 김성동씨가 한글대사전의 대부분 내용이 일본 사전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미 외국어에 대한 번역은 일본개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한학교육이 아닌 것을 근대교육이라 한다면 한국의 지식은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지식을 모방, 추종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식과 학자에 대한 준거기준이 우리가 스스로 정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방 끈만 가지고 지식 혹은 지식인에 대해서 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 스스로 개념을 형성하지 못하면 실체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이것을 그래도 한국의 자존심인 서울대학교 공대교수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의 지식의 실상을 부끄럽지만 속살을 내보였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들이 내놓은 2015년 책임 있는 저서인 '축적의 시간'에서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서 창의적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이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설계의 역량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 점에서 서울대학교에서 지식인이라 칭할 수 있는 교수들은 흥미롭게도 개념설계의 역량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반드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시행착오를 '축적'해야 얻어짐을 발견한 것이다.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고, 그 원인은 사실 다양한 실패의 경험을 축적해오지 못한 데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표준적인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역량과 달리, 창의적 개념설계에 필요한 지식은 교과서나 논문, 특허 등에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선진기업들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실패해 본 시행착오의 경험을 계속 반복하면서 경험지식을 축적해온 결과 우리 기업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개념설계 역량을 가지게 되었고, 바로 이 점이 산업의 종류에 상관없이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가장 큰 어려움의 실체라고 보는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산업이 처한 공통의 문제로서, 처방도 어느 한 산업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산업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지금까지 성장의 동력인 선진국의 제품설계를 베끼는 것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적인 제품설계 능력을 갖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시도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하면서 많은 지적 경험을 축적하라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음 사례에 주목하라고 말하고자 한다. 시계제조공이 모든 부품을 혼자서 조립할 때, 가끔씩 사람들이 여러 이유 때문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 제조공은 일단 일을 멈추었다 손님이 가고나면 다시 조립한다. 이 경우 문제는 처음부터 다시 조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계제조의 효율성은 매우 떨어진다. 만약에 어느 제조공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계 하나를 완전히 조립하는 것보다는 여러 개의 부품들을 모아 부분조립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손님들이 오기 전에 다양한 부분조립을 만들어 놓는다. 이 경우에는 방해받아도 조립할 부품의 수가 적기 때문에 시간 손실이 적어진다. 따라서 이 제조공은 부품에서 완제품을 시도하는 제조공보다 훨씬 많은 시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주문은 더 많아지고 경쟁력을 확보해 동종업계의 선두가 된다.

 이 사례는 19세기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하의 '사유의 경제성'에서 소개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사유의 경제성이 사회 모든 분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느냐의 여부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윤리 등 모든 부분에서 그 사회에 태어나면 모든 것을 새로 배울 필요 없이 보고,듣고,배우는 과정에서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과 결과를 온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사유의 경제성이 사회 모든 분야에 축적되고 수시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식의 축적과 경제적인 활용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유행에 쏠림이 강한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것에서 새로운 것이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만 바라보니 그 분야마저도 한걸음 더 들어가면 오리무중으로 헤매게 된다. 축적이 안되는 것은 시행착오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고, 이는 모든 분야에서 나름대로 축적된 지식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솔직히 표현하면 축적된 지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사유의 경제성에 대한 중요성을 이제는 지적해야 한다. 물론 과거의 모든 것이 축적되어 진화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천문학에서처럼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천지개벽이 있었지만 이 역시 천동설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해결책의 강구가 더 이상 무의미함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발전이고 진화이다. 이 부분에서 한국은 지난 100년 동안 일본과 미국, 유럽 선진국의 지식을 베껴서 활용한 것을 제외하면 지식의 생산-축적-활용-창조적 생산과정에서 거의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해도 달걀세례를 받지 않을 것이다.

 톰 니콜스는 '전문가와 강적들(원 제목: 전문가의 죽음)'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를 넘어 잘못 알고 있기 까지 하는데다, 심지어 잘못된 지식을 대놓고 우기는 지경에 까지 왔다고 주장하면서 어리석고 말도 안되는 주장들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더 배우기를 거부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나 지식인들도 거의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여겨진다.

 요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도 지식인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뭘 공부했는지 모르지만 방송국에서 보내 준 질문에 대해 어떤 분야이든지 불문하고 멋지게 대답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만능지식인이다. 이들은 전문지식과는 상관없이 그냥 자신의 의견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즉 자신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자들이다. 게다가 거들먹거리는 사이비 지식인, 전문가도 있다. 이들은 늘 TV에 출연하고, 칼럼 쓰고, 유투브 강연도 하고, 자신의 일과 경력을 선전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들의 통찰력은 학자티를 낼 때조차 천박한 수준이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만능지식인들이 설치기 마련이다. 지식 혹은 지식인의 실종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프랑스의 뛰어난 사회학자 부르디외도 이들의 위선과 기만을 혐오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한국의 경우, 지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역량의 부재로 인한 외국지식의 맹목적 종속성, 표절 등을 통한 학위 남발로 인한 학력인플레이션을 통한 지적 수준의 저하, 지식에 대한 판단기준의 상실로 인한 지식가치나 품격의 상실로 끼리끼리 혹은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지식 상황의 도래 등은 한국사회를 깊이 병들게 만들고 있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신의 연구결과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행위, 국가연구비를 연구개발에 사용하기보다 해외 가짜 학회참석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들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한국사회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말할 수 있는 지식이나 전문가들이 적어지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인터넷의 지식기능이 강화되면서(특히, 네이버의 지식-in기능을 살펴보라) 점차 지식인, 전문가, 일반인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있다.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진실을 덮으려 하는 제도나 법 때문에 전문가에 대한 믿음은 더욱더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사회가 건강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제대로 된 국가와 사회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비겁과 게으름 그리고 복종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식인이든,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구분할 것이 없이 사유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적이고, 비판적으로 판단할 용기가 필요하다. 두렵지만 이를 이겨내고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명예로운 어른이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톨스토이는 지식인들을 영리한 바보, 단순한 사람이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현실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린 채 세련된 멋만을 덧없이 추구하는 떠벌이라고 해석했으며, 때로는 아는 것이 많아서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골 빈 소리를 지껄여대며, 남보다 우월한 의식에 사로잡혀 있지만 무기력하고 무가치한 도시에서 자란 원숭이들이라 비난했음을 이사야 벌린은 그의 책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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