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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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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4.16  23: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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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현
 동아대의대교수 해부학
 

  칼럼개제 요청에 응하고 말았지만 글감이 따라 줄까 염려되었다. 임상의학자라면 독자들 관심이 많은 건강 관련 내용으로 지면을 메꿀 수 있겠지만 필자는 기초의학연구자이다. 며칠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벌써 첫 원고 제출 요구가 왔다. 무슨 주제로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며 컴퓨터 앞에 앉는데 방금 들어온 이메일 주소가 눈에 확 들어왔다. romance***@. 로망스. 낭만이다. 여느 사람처럼 진부한 영문이름 이니셜 대신에 이 분은 자신 주소에 낭만을 내세웠다. 마침 연구실 앞 정원을 내려보니 화사한 봄 꽃들과 짙푸른 나무들로 교정 풍경도 낭만적이다. 그래 오늘 글감은 낭만이다!

  18세기 말 부터 19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낭만주의 문화 예술 사조가 흥행한다. 이성을 중시하던 계몽주의가 18세기말 프랑스혁명이란 성과를 내자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정치체제를 이성으로 타파하였다고 의기양양하였다. 그러나 혁명은 곧 인간의 취약한 면을 보여 주었고 사람들은 절망하였다. 합리주의 자체가 신뢰를 잃자 사람들은 지성 보다는 감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민감한 감수성과 풍부한 상상력이 드러나게 되면서 예술은 상상력을 중시하였다. 낭만주의시대가 도래하였다. 예술작품들로 사람들의 감성은 풍부하여 졌다.낭만주의 운동은 예술사조로 국한되지 않았다. 사람들 마음에는 냉혈적인 이성보다는 더 따뜻하고 화려한 세계관이 자리잡게 되었다. 낭만주의가 좋은 일을 한 것이다. 반면 낭만주의는 사회 전반을 반합리주의적이고 주정주의적이며 다소 신비적인 사조로 이끌기도 하였다. 역사서술도 이전의 과학적 서술에서 문학적 서술로 방향을 틀었다. 당시 유럽 젊은이의 국가주의적 정치 이상 출현 역시 낭만적인 모험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독일 의학의 모습도 뒤틀리게 하였다. 겨우 2세기 전 과학혁명의 시대가 열렸고 과학은 비로소 낡은 철학적 유행에서 벗어 나려고 하는 시점이었다. 그즈음 근대의학도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파리에서는 거대 병원이 건설되고 파리임상학파라는 현대의학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었다. 하지만 낭만주의 영향으로 라인강 동 쪽 의학은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독일에서의 과학은 자연과학 전체를 체계화하는 경향을 띠었고 의학도 이를 추종하였다. 모든 자연현상이 형이상학적 원형에 들어 맞아야 하였듯 의학 이론도 마찬가지였다. 의학은 관념적인 이론으로 체계화 되어갔다. 흥분, 전기, 자기, 산소 등이 건강과 질병을 설명하는데 과도하게 일반화되어 도입되었다. 의학이 관념적인 것으로 변하자, 중세철학에서 겨우 벗어났던 의학은 건강과 질병을 철학으로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사변적인 정신은 신비주의나 귀신학으로 떨어져 악마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기독교 병리설을 낳기도 하였다. 이런 의학들이 당시에는 놀랍게도 헤아릴 수 없는 지지자들을 거느렸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치료를 지배하였다.

  낭만주의 발흥 한 세기가 흐른 후, 히틀러는 낭만주의 대표음악가 바그너의 음악들을 이용하여 게르만민족의 광기를 부추겨 나치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독일에서 낭만주의는 독일국민들을 파국으로 몰고가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독일에서 낭만주의의학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 당시 감상적인 시대에도 대부분 의학자들은 냉정하고 의연하게 버티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대과학정신으로 무장한 기라성같은 독일의학자들의 출현이 이어졌다. 마침내 19세기 후반 독일은 X선의 발견, 세균학의 발흥 등으로 현대의학의 본산으로 탈바꿈하였다.

  백 수십 년 전에 독일 땅에서 스쳐가고 말았던 낭만주의의학을 2014년 봄 뜬금 없이 꺼내 들은 이유가 있다. 낭만주의의학의 문제는 현재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우리 국민은 꽤 관념적이다. 관념주의는 실증주의와 대립한다. 건강과 질병이론을 아주 단순화된 체계로 설명하면 잘 받아 들인다. 치료법 역시 단순화 시켜 물/소금/자석/소변/금식요법 등이 성행한다. 이들 모두 사변적사고로 의학을 변이시켰던 낭만주의의학과 궤를 같이 한다. 몇 년전 단순화된 배아줄기세포 이론은 너무 손 쉽게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었다. 개인 뿐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는 실증적 비판이라는 여과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다. 보도와 교육 여러 측면에서 이런 취약함은 빈번히 드러난다. 근래에 현대의학은 지나친 자연과학적 경도로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비판에 앞서, 개인과 사회의 척박한 근대과학정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낭만주의에 시비를 걸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낭만주의는 인류에게 환상적인 상상력의 세계와 따뜻한 감성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죤의 음악을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가수 최백호의 노래 가사처럼 궂은 비, 옛날, 슬픈 뱃고동 소리 같은 낭만적 기억들 만으로도 비어있는 가슴은 채워진다.

  낭만은 두 얼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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